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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약 성경이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고요?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4-06-30
조회 7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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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예수님의 공생애~사도시대까지 아람어를 사용했다는 주장

 

신약에서는 달리다굼(5:41, 일어나라), 에바다(7:54, 열리라), 엘리엘리마라사박다니(27:46,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라타나(고전16:22,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골고다 (15:22, 해골), 겟세마네(26:36, 기름 짜는 틀)등이 아람어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육성은 일부분 아람어가 사용되었는데, 문헌적인 증거로 보더라도 AD 1세기 경의 팔레스 타인 지역은 아람어를 사용하였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며, 사복음서는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으며 예수님의 육성(직접화법)에 대해서는 아람어가 기록되어있기도 하며 이것을 헬라어로 해설하기도 하였다.

그의 제자들이 갈릴리 방언을 사용했을 때에 다른 사람들에게 구별되었는데, 예수님과 제자들이 사용했던 사투리가 곧 아람어였다고 학자들은 추정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세 번 부인할 때에 옆에 있던 사람들은 베드로의 말소리가 달랐다고 지적합니다.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26:63)

특히 바울이 말하였던 히브리 방언은 아람어로 보는 것이 보편적인 견해입니다.“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 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21:40)

예수님은 바울에게 나타났을 때에 히브리방언으로 바울에게 말하였다고 사도행전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아람어가 히브리 방언이라고 불렸다는 증거가 되어집니다“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방언으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 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26:14-15)

 

 

v 신약성경도 히브리어로 봐야 한다는 주장

 

신약시대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통용어로 사용하였다는 주장을 근거로 신약 성경을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록되었다고 주장하며 신약 히브리어 역(; 히브리인들을 위한 번역) 성경을 보여주며 설득하니 많은 이들이 현혹되고 있어서 이를 바로 잡고자 한다이는 국내의 한 단체에서는 히브리어 파자(破字) 해석, 성경에는 부정이 없다는 엉뚱한 주장도 한다, 만약 성경에 부정이 없다면 사탄의 역사는 없었던 것이고, 사탄의 역사가 없다면 죄도 죽음도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헛된 것이 되고 만다. 이러한 내용을 가르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신학계에서 확증되지 않은 미확인 된 설()을 마치 검증된 양 퍼뜨려지고 있고, 목회자들이 검증되지 않은 설()을 확인도 해보지 않고 히브리어라는 언어를 특이하게 가르친다는 이유 때문에 많이 미혹되고 있어 매우 안타까운 마음 금할 길 없어 그 부당성을 피력하려고 한다.

 

 

v 히브리어와 아람어의 차이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가나안 종족의 언어가 있었는데 이것이 가나안 정복 후에 히브리어가 된다. 아브라함은 밧단 아람(메소포타미아)을 떠나서 가나안에 들어가서 살게 되었는데, 아브라함이 가나안 에 정착하면서 전혀 언어 장벽 때문에 곤란을 겪었다는 대목이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지 않다. 또한 애굽을 떠나 광야 사십 년을 보내고 가나안을 점령하 게 된 이스라엘 백성과 가나안 족속 사이에 언어장벽이 있었 다는 기록도 없다. 이로 보건대 히브리어와 아람어는 서로 통용이 가능한 언어라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실 제로 단어의 구조는 동일한 알파벳의 구조를 갖는다. 서로 다른 점은 경상도 방언과 함경도 방언의 정도의 차이점 보다 더 작은 차이이다.

 

 

v 헤브라이즘(Hebraism) 과 헬레니즘(Hellenism )

 

헤브라이즘은 신으로부터 인간에 대한 계시(구약성경)를 근간으로 하는 신본주의(神本主義) 이며, 헬레니즘 은 그리스 신화가 바탕이 된 귀족 문화에서 이민족과의 결합으로 변모하여 휴머니즘(humanism)을 본질로 한다. 알렉산더가 페르시아 정복 후에 오리엔트적인 전제 군주 풍의 의례를 받아들이고, 페르시아 공주와 결혼, 페르시아 귀족을 친위대로 채용하는 등 이방민족의 통치 수단으로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의 결 합을 시도하여 더 진보된 새로운 헬레니즘 문화가 탄생하였다. 이로써 그리스인이 이민족을 경시하던 주의 에서 세계시민 주의로 발전한다.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헤브라이즘 사상 즉 신본주의로 기록되어 있다. 구약성경을 바탕으로 한 유대교는 오늘날까지도 헬레니즘을 인정하지 않고 이방민족을 경시하므로, 유대교는 오로지 유대인들의 상징처럼 유 지되고, 선민의식이 민족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오심은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 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신대" [15:24] 이스라엘을 구언하러 오셨는데, 아직도 유대인들은 그리스도 예수의 핵심 사상인 사랑과 긍휼 을 베푸는 구속의 정신은 없는 빈 껍데기기에 불과한 종교로 전락해 있는 것이다.

 

 

v 헤브라이즘과 헬레니즘 문화 탐방

 

종교적이고 사상적인 발상지 차원을 벗어나서 대한민국과 이어서 전 세계에 스며있는 헤브라이즘과 헬레 니즘의 생활과 문화 전반을 살펴보자.

 

먼저, 대한민국의 헤브라이즘은 원 의미가 갖는 그대로 신본주의 즉 천신숭배 사상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렸던 환구단(圜丘壇)은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던 곳으로 유명하다. 산신제의 일종인 기우제 (祈雨祭)는 가뭄이 들었을 때, 지방 관리나 임금이 친히 하늘에 제사를 드리는 형태이다. 이런 형태의 제사 행위는 아시아의 불교 문화, 중국(천자문), 몽골(샤먼), 중남미(잉카, 인디언), 태평양 섬나라, 아프리카, 유럽 등 세계 여러 곳에서 발견된 사실이다.

 

둘째, 대한민국의 헬레니즘은 근간인 그리스 신화와 유사한 형태가 씨족 문화의 시조에서 다량 발견된다. 단군 신화, 알 신화(금 알지, 박혁거세). 나뭇군과 선녀, 무녀들의 무속신앙, 강화 마니산 성화 체화 선녀 (페르테논 신전과 유사)등 우리문화와 토속 신앙과 생활 속에 깊숙히 뿌리 내리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지 원천 학문적으로 체계화 작업에서 유럽에 선수를 빼앗겼을 뿐이다. 그래서 헤브라이즘 사상인 구약의 하나님과 헬레니즘 사상인 신약의 예수님을 쉽게 받아 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세계적으로는 대표적인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의 여사제들이며,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씨족문화는 거의 모두 헬레니즘 의 근간인 그리스 신화와 닮아 있다.

 

 

v 헬레니즘과 성 육신의 관계성

 

구약성경은 하늘에 계신 여호와 하나님의 계시와 예언자의 입을 통한 미래의 예언을 다루고 있으며, 특히 오실 메시아를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구약에서는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 신은 계신다 그러나 볼 수는 없다는 사상이 헤브라이즘이다. 헤브라이즘이 종교의 한 형태로 발전하는 데 반드시 필요로 한 것이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금, , , 철로 부어서, 나무로 조각하여 만든 우상이다. 이스라엘 백성 은 제2계명을 어기고 산당과 주상과 아세라 목상과 광야에서 모세에게 명하여 만들었던 놋 뱀을 히스기야 왕 즉위 때(왕하 18:3) 까지 우상으로 섬겨왔다. 그리고 이후에도 신의 명확한 모습을 보았노라고 기록한 자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호와 찾아서 만나야 살 수 있을까?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염려컨대 저가 불같이 요셉의 집에 내리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을까 하노라"[5:6]

 

그 해답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예언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에서 찾을 수 있다.

"여호와께서 또 아하스에게 일러 가라사대 [11]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12] 아하스가 가로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치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 [13] 이사야가 가로되 다윗의 집이여 청컨대 들을지어다 너희가 사람을 괴롭게 하고 그것을 작은 일로 여겨서 또 나의 하나님을 괴로우시게 하려느냐 [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사 7:10-14]

 

징조를 찾아 만나면 살 수 있다는 말이다. 여호와께서 징조를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시겠다는 예언 을 하셨고, 그 예언이 성취가 되려면 신의 인간의 몸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전재가 필요하다. 이 전재 가 바로 헬레니즘 그리스 신화이다. 헬레니즘은 BC330~AD330년 걸쳐 왕성한 문화를 꽃피운다. 그 중심점에 신이 인간의 몸으로 오신 징조를 보여주신다. 이 사건을 성육신(成肉身Incarnation )이라 하는데, 헬레니즘 사상의 언어가 아니면 성육신을 묘사할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헤브라이즘 사상의 언어로는 성육신을 묘사 할 수 없어서 헬레니즘 사상을 타고 오셔서 예수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 신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신 다. 이 예수의 말씀을 믿을 것이지 말지는 그가 가지고 있는 사상에 기초한다.

 

 

v 마리아에게 잉태된 것은 이사야가 예언한 징조였다.

 

"그래서 그의 이런 삶을 속태우면서 보니 주의 사자가 꿈을 좇아 드러나 말하되, 다윗의 아들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녀 안에서 낳게 된 자는 영에서 나온 거룩한 자이다. [21] 그래서 아들을 출산할 것이니 그의 이름을 예수라 초청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그의 백성을 그 삶의 죄 삶으로부터 구원할 것이다. [22] 그래서 이 전부는 주의 의하여 예언자로 인하여 구전 된 것이 채워지게 하려고 발생한 것이니 말씀하시되, [23] 보라 처녀가 태 안에 가질 것이다 그리고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엠마누엘이라 초청할 것이요, 그것이 번역되면 하나님이 나의 삶에 결합되어 계신다. [24] 그래서 요셉은 잠으로부터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가 명령한 것 같이 행하여 그 아내를 데려왔다;" [마 1:20~24]

 

 

v 하나님의 징조를 찾아 만난 자들

 

° 별을 보고 찾아온 동방 박사들이다. "그리고 그의 삶이 그 처소 안에 이르러 그의 모친 마리아와 함께 한 훈육아를 보았다, 그리고 그의 삶이 엎드러져 그에게 경배하였다, 그리고 그의 삶의 보물 삶을 열어 그 에게 예물로 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다. " [ 2:11]

 

° 들에서 양을 지키던 목자들에게 나타난 천사 "구주가 오늘날 너의 삶으로 탄생되었으니 그는 다비드 성 안에 크리스토스 주이시다. [12] 이것이 너의 삶에게 징조이니, 너의 삶은 포대기에 싸여져 구유 안에 누인 갓난 아기를 만날 것이다." [ 2:11~12]

 

° 목자들이 만난 징조 아기 예수 "그리고 저의 삶이 속력을 내어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 안에 누인 갓난 아기를 발견해 내어서; [17] 보고 이 훈육아에 관하여 저의 삶에게 전달 받은 해설에 관하여 두루 알게 했다. [18] 그러자 듣는 모든 삶이 목자 삶에 의해 저의 삶을 향하여 전해진 삶에 관하여 기이히 여겼다;" [눅 2:16~18]

 

 

v 히브리어와 헬라어의 특징적 차이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동사의 시상인데, 헬라어엔 복잡한 법(), (), ()를 가지고 있으나, 히브리 어엔 시()제가 없고, 완료와 미완료 태 만이 존재한다. 완료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의미이고, 미완료 란 존재하기 시작하나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특히 현재란 매우 중요한 시제이다. 하나님의 실체를 표현하는 시제이기에 예수께서 자신이 누구라고 설명하실 때 에이미(eijmi 동사, 현재, 능동태, 1인칭, 단수)를 사용하신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 이라(eijmiv)" [22:13]

 

그러나 히브리어 구약성경에는 현재는 물론 시제 자체가 없기 때문에 자신을 설명 하실 때 주로 명사의  연결이나 형용()사가 꾸며주는 명사 형태로 구성되어 있지 시제를 나타낼 수 없다. "영원한 하나님 "[ 21:33],  "전능의 하나님" [ 28:3], "거룩한 하나님, 질투하는 하나님" [24:19].

 

동사적인 표현으로서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hy(에흐에; 칼 미완료 공성 일인칭 단수). "나는 스스로 있느니라" 는 현재형이 아니라, "나는 미완료로 있느니라, 또는 나는 있기를 소망한다" 라고 번역해야 한다.

 

현재라는 시제가 없는 언어로 어떻게 실체를 표현 할 수 있겠는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헬레니즘의 가장 중심이 되는 시기인 AD 원년에 하나님께서 인간의 모습으로 오시게 되는 것이다.

즉 성육신 사상을 이해 하려면 헬레니즘이 없이는 설명이 불가능하기에 구약 헤브라이즘 에서는 성육신이 이뤄지지 않았고 신약 헬레니즘으로 성육신을 완성하시게 된다. 그러나 헤브라이즘 사상을 가진 유대교 바리새파 서기관과 사두개파 대제사장 들이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인정할 수 없었기에 결국 하나님을 죽이게 되는 것이다.

 

정리하면 구약성경은 반드시 헤브라이즘으로 기록해야 맞고, 신약은 헬레니즘으로 기록해야 할 당위성을 위에서 설명을 통해서 설명이 됐으리라 믿는다.

 

특히 바울은 이와 같은 사상의 흐름을 자신에게 빗대어 설명하였는데, 바울 자신이 유대인이요 헬라인 이란 뜻은 국적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헤브리이즘: 옛 사람 사울), 헬라인(헬레니즘: 새 사람, 바울)

을 말하고자 함이다.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 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2: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 에게라

[고전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 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이처럼 성경은 한 사람 한 사람이 간직하고 있는 두 가지 사상의 흐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계획해 놓으신 구원 계획을 완성해 가시고자 하신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영적 진리의 구속사를 인생의 안목으로 구약은 유대인의 역사서 정도, 신약은 예수님과 사도들의 역사, 계시록은 앞으로 속히 이뤄질 일들을 기록한 책 정도로 이해하고 가르치고 있으니, 자신의 지적 수준에서 함부로 재단하고 결론 내려서 주장한다. 먹히면 성공 아니면 말고 식의 정치인들의 한탕주의 의식으로 생명의 책을 다루고 있기에 더욱 분노 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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