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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불학 무식한 수많은 복술(卜術)의 목회자들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10-07-02
조회 5593
파일
오늘날 불학무식한 수많은 복술(卜術)의 목회자들은 아직까지도 기적의 체험과 영혼 구원에 대하여 비성경적인 황당한 논리와 무지한 설교(사실 '연설'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함)를 통하여 많은 성도들에게 혼란을 야기시키고 있는데, 이는 명백한 비도덕적인 삯꾼 목회자들의 전형적인 설교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말하는 각종 기적의 체험이 우리 믿음의 성도들을 온전한 신앙인으로 담대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며, 우리들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과는 상충(相衝)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 큰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고도 거친 풍랑을 두려워하며 바다 물속에 빠져 갔던 베드로의 모습에서, 또한 홍해와 광야에서도 수많은 큰 기적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함으로서 40년 동안 애타게 그리워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삭막한 광야에서 그들의 뼈를 묻어야 했던 출애굽 1세대들의 비극적인 말로에서 기적 신앙의 허무한 말로를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까지도 성경 본질의 말씀을 오도하여 오로지 육신적인 축복(祝福)에만 초점을 맞추어 우리나라 기독교를 기복주의화시킴으로서 수많은 성도들에게 온전한 하나님의 영(靈)의 양식을 먹여 주기보다는 뻔히 부작용이 날 것을 알면서도 썩어 냄새 나는 세상의 양식을 혼합하여 먹을 것을 강조하는 목회자들이 아직도 한국 교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일러 가라사대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대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가라사대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마 14:22~33)

이와 같이 예수님의 제자들은 바다 한가운데서 거친 풍랑을 만났다. 하지만 왜 그들이 거친 풍랑을 만나야 했는지 그 이유를 우리들이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은 거친 풍랑 속에서 분명히 자기 자신들의 연약함과 주님의 도우심을 동시에 체험을 하였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우리 인간들은 이 육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그 어떠한 특별한 범죄를 저질러서가 아니라,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각종 환란과 역경의 고달픈 풍파를 경험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신앙인들에게 있어서 삶의 현실에 다가온 힘든 환란과 고난은 어떤 점에서의 의미로 생각할 수가 있을까? 굳이 성경을 통하여 해답을 찾는다면, 그러한 환난과 고난은 우리 신앙인들로 하여금 자기 자신의 무능함과 무력감을 깨닫게 하고 겸손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환란과 고난들을 통하여 우리들 자신 한가운데로 찾아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우리 신앙인들은 상기 본문을 통하여 거센 풍랑과 베드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엿볼 수가 있다. 그래서 거센 풍랑에서 우리 자신들의 인생을 보고 베드로의 행동을 통하여 우리 자신들의 신앙의 자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불과 몇 시간 전에 벳세다의 들녘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주님의 능력을 생각하며 어두운 밤이었지만, 희망의 찬가를 부르면서 즐겁고 들뜬 마음으로 배를 타고 갔을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 보자면, 어린 소년이 가지고 온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이나 되는 장정을 먹였으니, 말이 오천 명이지 숫자에 포함을 시키지 않았던 여자들과 어린아이들까지 합친다면 족히 1만 명이 넘는 대군중을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끝도 없이 먹일 수가 있어서 제자들은 광주리에서 계속 꺼내어지는 음식들을 배급해 주면서 얼마나 놀라고 가슴들이 설레었겠는가?

그러한 사건을 계기로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그 기적의 능력들이 자기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삶에 더욱더 놀라운 결과와 성취를 가져다줄 것을 확신하면서 자아도취에 빠져 엉뚱한 상상을 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마음에서 상상하는 미래가 장밋빛으로 보이기 시작하였던 것이다. 더불어 자기 자신들의 마음에서 상상하는 미래의 꿈들이 척척 이루어지게 될 것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꿈이 있는 자는 결코 망하지 않는다"라고 말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오병이어의 기적의 능력이라면 무슨 일이든지 못하겠는가? 그러한 기적의 능력을 가지신 주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계시고 자신들의 주군이 되셨는데 말이다.

때문에 그들은 이제부터는 없는 것들도 있게 될 것 같았고, 안 되는 것들도 이루어질 것 같았고, 막힌 것들도 뻥 뚫릴 것 같았고, 모든 장애물들도 없어질 것 같았고, 그동안 힘들었던 모든 삶들도 이제부터는 형통하게 될 것처럼 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그들은 속으로 이렇게 외쳐 보았다. "큰 산아!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될지어다"라고…….

또한 그들은 그 어떠한 고난과 난관들도 다 극복할 수 있을 것처럼 보았으며, 그 어떠한 문제들도 다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어떠한 꿈들도 다 이루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았으며, 그 어떠한 비전들도 다 성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 이유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일어났던 오병이어의 기적 사건이 몇 번만 더 재현된다면, 온 나라와 온 세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영접할 것 같았으며, 이와 더불어 자신들이 그 위대한 메시아 왕국에서 정권의 실세로서 장관과 같은 높은 반열에 오를 것이라고 기대하고 꿈을 꾸며 가슴이 설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이제 우리들은 할 수 있다.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라고. 또한 그들은 이와 같은 기적이 몇 번만 더 재현된다면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님께서는 민족의 메시아로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어려운 육신의 삶 속에서 못 살고, 굶주리고 있지만 이제부터는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물질과 축복이 무한정으로 쏟아질 것이 틀림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만약에 그 당시 제자들이 이러한 마음으로 각 지역으로 파송되어 목회를 하였다면, 과연 그 백성들을 어떻게 가르쳤을까? 필시 그들은 오늘날의 허무맹랑한 거짓 목회자들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기적의 축복만을 강조하며 "꿈은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부르짖으며 미래는 꿈을 가진 자들의 것이라고 가르쳤을 것이다. 그리고 희망과 비전을 확신하는 것이 온전한 믿음이라고 가르쳤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기적으로 가난을 몰아내자고 가르쳤을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사단 마귀의 저주와 가난은 물러갈지어다"라고 힘차게 외치며 그릇된 복음을 전파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날의 거짓된 목회자들처럼 기적 축복의 신앙에 젖어서 아마도 틀림없이 복술의 목회자들이 되어 있을 것이다. 때문에 이미 2000년 전에 축복론과 응답론, 그리고 비전론의 희망 신학을 창시했을 것이다. 또한 이미 2000년 전에 '몇 중 복음과 몇 박자 축복'을 정립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오늘날의 추잡한 목회자들처럼 성경의 말씀을 교묘히 인용하여 가난과 병마를 몰아내자고 가르치며, 성경의 말씀으로 육신의 떡을 만들어 먹는 방법들을 가르치려고 하였을 것이다.

때문에 그 당시 제자들은 비록 오병이어 기적의 축복을 직접 옆에서 목도하였으나, 앞으로의 복음 사역을 위해서는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셨던 기적의 신앙이 아니라, 진리의 신앙(信仰)인 영혼 구원을 위한 주님의 뜻을 먼저 배우고 복음을 행해야 했던 것을 미처 깨닫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결국 베드로는 기적의 신앙만을 의지함으로서 물위를 걸어갔지만, 이내 곧 그는 물에 빠지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금 말하자면 그는 기적의 신앙에만 의지하여 물위를 자신감 있게 걸어갔지만, 주님께서 바라시는 온전한 믿음으로 장성한 충만한 분량(分量)에 이르지 못함으로서 결론적으로 그가 물에 빠진 사건을 바탕으로 오히려 이를 통하여 참다운 신앙인으로 거듭난 영적인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제자들이 타고 있던 배가 바다 한가운데서 바람에 거슬리며 거친 물결로 인하여 그들 모두에게는 두려움과 고난이 엄습해 왔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그들이었으나, 산더미처럼 몰려오는 풍랑의 두려움 앞에서는 예수님의 제자임을 자부하던 그들이 그 상황 속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아무리 예수님과 함께하며 감히 인간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기적을 체험한들 무엇하겠는가? 결론적으로 그러한 기적이 그들로 하여금 거친 풍랑의 두려움에서 결코 해방시켜 주지를 못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그러한 기적의 체험이 결코 우리들의 믿음을 담대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며, 또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명심해야 한다. 그 이유는 엄청난 출애굽의 기적을 수없이 체험을 하고서도 범사에 감사와 인내의 신앙을 소유하지 못하여 결국에는 황량한 광야에서 엎드려지고 말았던 광야 1세대의 멸망이 말세를 만난 지금의 우리 신앙인들에게 경계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고전 10:11)

우리 인류 역사상 광야 1세대만큼이나 하나님의 기적과 이적을 체험했던 세대들이 어디에 또 있었는가? 당시 그들은 애굽 땅에 쏟아지는 10가지 기적의 재앙과 기적의 구원을 친히 목도했던 백성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흉흉한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드러나는 것을 직접 목도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들은 때에 따라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으며, 그것들을 배불리 먹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시내산에서 강림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우렁찬 뇌성과 우뢰 가운데서, 온 땅이 흔들리고 산이 요동치는 가운데서 자신들의 눈과 귀로 직접 목도하기도 하였다. 어디 그뿐이었나? 그들은 자신들이 거하는 진 중앙에 구름 기둥과 불기둥이 항상 자신들을 인도하고 보호함을 직접 체험하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그러한 기적과 이적의 축복들이 그들의 영혼만은 건져낼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신앙인들인 우리들이 꼭 경험해야 하는 삶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기적의 체험이 아니라 오로지 범사에 구원의 한 분이신 하나님만으로 만족해 하면서, 항상 기뻐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때문에 지금의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와 관련된 내일의 문제, 즉 거센 풍랑이 휘몰아치는 이 육신의 세상만을 바라보지 말고, 오로지 구원의 한 분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바라볼 때, 우리 인간들의 구원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 개개인들의 온전한 믿음과 의지를 보시고, 이 육신의 삶을 살아가는 당신의 자녀들을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고 책임져 주심을 믿어야 할 것이며, 특히 불학무식한 수많은 복술(卜術)의 목회자들의 비성경적인 황당한 논리와 무지한 설교를 통하여 우리 신앙인들에게 혼란을 야기시키는 비성경적인 삯꾼 목회자들의 전형적인 혹세무민(惑世誣民)한 수법에 항상 진리의 본질인 성경의 말씀으로 영적 무장하여 절대로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계속)

윤병수 / 벧엘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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